⎟들어가며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본 적 있으신가요? 제가 추측하기에 대략 5년 전부터 레트로 취향이 대두될 때, 필름 사진도 그러한 흐름에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제는 필름을 생산하는 곳도 적어지고 다루는 사람도 적어져 그 희소성이 오히려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필름에는 몇 가지 단점들이 존재하죠. 촬영 횟수에 제한이 명확하고 촬영할 때 실수해서 원하는 사진을 찍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수는 경우의 수가 굉장히 다양해서 추후에 따로 제 경험담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언제나 들고다니는 스마트폰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도구가 오직 필름 밖에 없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이번에 새롭게 개관한 뮤지엄 한미에서 오직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시대의 한국 사진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전시의 제목은 <한국 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929년부터 1982년까지의 한국의 사진과 사진가들의 활동을 회고하는 전시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 격동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 근현대사가 사진으로 어떻게 기록되어있을까요? 이번 전시는 그 물음에 답하며 나아가 앞으로의 한국 사진계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순탄치 않았던 준비과정
한국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인 한미 사진 미술관이 지난 20년의 시간을 품고 새롭게 뮤지엄 한미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따라 20주년 기념 개관전인 <한국 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은 한국 사진이 어떠한 제도적 조건과 역사적 문맥 속에서 역사를 일궈갔는지 밝힙니다.
오랜 역사를 함축하는 전시이기에 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제작된 빈티지 프린트의 부재가 비일비재했고, 대표작을 전하지 못한 채 작고한 한국 사진사의 몇몇 사진가들이 있습니다. 유족의 연락처를 알아내긴 어려웠고, 연락이 닿았다고 해도 작품의 저작권과 소유권 문제를 비롯해 부실한 관리 상태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시작을 당대에 제작된 빈티지 프린트로 구성하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지만 사진가가 활동 시기에 행한 프린트의 수가 적었고 원본 필름이 훼손되어 디지털 자료로 남은 사진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의 목적은 빈티지 프린트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한국 사진사를 돌아보기 위한 것이기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봅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이번 전시에서 총망라 된 한국 사진사는 유럽 사진계의 흐름이 그리는 궤를 따라갑니다. 전쟁의 참상, 이념의 변화와 대립 등 시대가 격동할 수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은 새롭거나 선례를 변주하는 형태로 다각화됩니다. 우리 역사 속의 사진 역시 낭만을 표현하듯 회화적이기도 하고 현실을 그대로 베낀 듯 사실감으로 무장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이렇게 한 데 모였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사진을 슬라이드의 형태로 둘러보면 당시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순간을 정지시킨 사진은 역설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진가들은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것, 뒤떨어지고 부족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등 무엇이 되었든 그 자체로 우리 세상을 이루는 요소들을 각자의 시선으로 남겨뒀습니다.
지나온 역사 속의 사진들과 사진가들이 묻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우리 시대의 격동을 포착하고 있는가?”. 과연 현재 내가 든 카메라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에 대한 기록은 분명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일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진가들은 왜 사진을 찍었을까요?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왜 사진을 찍을까요? 답을 구하긴 어려울지라도 질문에 당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전시를 볼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전시를 보고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시대를 외면한다면 그 시대 역시 나를 외면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사진을 좋아하고 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전시를 통해 답은 아닐지라도 힌트를 얻길 바랍니다. 그리고 소위 예술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돌아볼 수 있는 역사에 잠시 눈길을 돌려 예술과 예술가는 왜 존재해야하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 뮤지엄 한미 삼청
🗓 ~ 2023.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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