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te

AI와 예술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대담

by 포토크리에이터 Bear 2023. 5. 24.

베넷 밀러의 AI 작품 〈무제〉 시리즈.

 

AI 기술에 대해 현업 창작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텍스트로 제작하여 국제 사진 공모전에서 수상을 거머쥐는 일이 있는가 하면, AI가 화풍이나 디자인을 학습하지 못하도록 '옵트아웃'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엘르 매거진에서 이루어진 현업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생성형 AI를 통한 창작에 대한 인터뷰 중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생성형 AI가 당신의 창작을 위협하나요?

  1. 지면 광고, TVC에 간간히 챗GPT로 쓴 카피가 보인다. 백화점 광고 문구를 AI 카피라이터가 썼다는 뉴스도 있다. 위협으로 느끼기보다 AI가 카피라이터를 대체하는 걸 '트렌드'로 여길까 봐 걱정했다. 카피라이터는 광고문구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브랜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한 뒤 타깃을 설득한다. 물론 정해진 단어로 다양한 문장을 쓰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어떤 카피라이터에게는 꼭 필요한 '서비스'일 수도 있겠지만.

  2. AI에게 밥그릇을 빼앗길 수 있는 위기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예술의 범주에서 AI 작업물이 늘어나는 추세니 AI 작품 퀄리티와는 별개로 예술의 정의에 관한 이슈가 생긴건 분명하다.

  3. 저작권법이 엄격하지만 AI 작품 관련법은 애매한 부분이 많아 골머리를 앓는다. AI가 아마추어 일반인이 음악을 즐기고,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데 도움이 되는건 고무적이지만 ‘로봇의 악기 연주’는 신기한 것 이상으로 평가받긴 어렵다.

  4. 비평과 평론은 의견의 영역, 객관보다 주관의 영역이고 그 주관을 얼마나 객관적인 화술로 전달하느냐 하는 싸움이다. 사고의 심도와 견해의 강직도가 깊고 강해야 하는데 결과물이 고유값이라기보다 평균값 산출에 가까운 AI의 논리구조상 ‘스스로 갖는 입장’이라는 것의 깊이를 함양하기는 어렵다. 만약 AI에게 평론가라는 직업을 부여한다면 본인의 말을 한다는 평론의 첫째 원칙에 완벽하게 위배된다. 속되게 말해 상도덕에 어긋난다.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일까?

  1. 과거 사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림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예술인가?’가 화두였다. AI와 창작은 이미 공존하는 단계이고, 이 흐름에서 중요한 과제는 창작자 스스로 주체성이 휩쓸리지 않도록 더욱 확고해야 한다.

  2. 기술적인 부분은 AI가 대체할지라도 결국 누군가의 이름으로 작품이 나오려면 키워드를 입력하고, 생성 이미지를 선택하는 모든 과정에 작가가 관여해야 한다.

  3. 체급으로 나뉘는 스포츠 경기처럼 AI를 얼만큼 활용하느냐에 따라 여러 AI 예술 장르의 개념이 정립되는 것이지, 극단적으로 ‘예술로 받아들이냐 마느냐’ ‘공존이 가능한가 아닌가’로 논하는 것은 소용없다.

  4. 당연히 창작에서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인공지능과의 합작도 예술이 맞지만 중요한 건 감상자에게 납득 가능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5. <2050년의 사계>라는 공연에서 비발디의 ‘사계’ 음악 소스를 AI에 학습시키고 ‘2050년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파괴됐을 때 어떤 사계가 탄생할지’ 실험한 적이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관객 입장에서 이 정도 스케일과 유의미함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최신 기술을 접목했더라도 ‘신기함’ 이하 수준에 시간과 돈을 들여 보지 않을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6. 창작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AI의 도움을 받든, 아니든, 작품을 얼만큼 더 완성도있게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며, 활용 방식의 문제보다 직업적인 마인드와 결과물의 수준, 도덕성이 더 큰 화두다.

  7. 피카소가 ‘하수는 모방하고 고수는 훔친다.’고 했다. 사람의 뇌 속에 다양한 영감이 쌓이고 그들 사이 새로운 연결로 창작물이 탄생하는 것이니, AI가 딥 러닝을 통해 어떤 색 조합과 어떤 구도가 좋은지, 어떤 식으로 메시지를 담아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그 구조를 파악해 최적의 창작물을 만드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8. 그러니 이 ‘AI 광풍’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감상하고 평가하는 사람의 정립된 기준이 중요하다. 모사꾼이 대가의 미술 작품을 똑같이 그려내더라도 그것은 위작일 뿐, 비슷하게 그려냈다고 비슷한 값을 매겨주지 않으니까.

  9. 근본적으로 비평은 남의 것을 평하는 일인데, 남의 것을 이야기하는 주체가 온전한 본인이 아니라면, 비평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10. 결국 AI라는 물성이 갖는 특징이 도덕적이냐 비윤리적이냐 하는 기준 또한 사람이 다루는 방식을 기준으로 나뉠 것이다.

 

어쩌면 이미 답이 나와있는 질문일 수 있다.

  1. 사실 AI의 예술성을 인정할 것이냐 혹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이미 철지난 논의가 됐음이 분명하다. AI는 디자인에 포토샵 툴이 생기고, 드로잉에 아이패드가 생겼득 그저 인간이 언젠가 자연스럽게 적응하고야 말 기술적 경향일 뿐.

  2. 그러니 이 시점에서 인간이 신경 써야 할 문제는 AI를 이겨 먹느냐, 동료가 되느냐가 아닌 창작자로서 존엄과 자존심, 도덕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다.

  3. ‘인간다움’은 창작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각과 관점, 책임감과 이타심 같은 인간적인 감정 그리고 ‘나는 어떤 창작자인가’를 끊임없이 고뇌하려는 태도에 있다.

 



출처 : 엘르 매거진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