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sight

트럼프의 '그 사진'은 왜 유명할까?

by 포토크리에이터 Bear 2024. 7. 18.

 

 

 

지난 7월 13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 중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온 세상이 떠들썩 해졌다. 다행히 트럼프는 순간 고개를 살짝 돌린 덕에 귀에 총상을 맞은 것으로 목숨을 건졌다. 다만 이 총격으로 유세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 사망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번 총격에서 살아남은 트럼프는 현장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며 지지자들을 끓어오르게 했다. 대선 후보로서 명확한 이미지를 각인시킨 이번 사건에선 한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며 올해 대선은 트럼프의 승리라는 전 세계의 여론을 공고히 했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노쇠한 모습을 보이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푸틴 대통령으로 소개하는 등 여러 말실수를 거듭하며 입지가 위태로워진 바이든 대통령에겐 같은 편조차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총은 트럼프가 맞았는데, 치명상은 바이든이 맞았다.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그 사진은 올해 미국 대선의 판도를 확고히 했고, 훗날 역사에 거론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도대체 왜 잘 찍은 사진일까? SNS에서의 반응을 살펴보면 일반인과 사진 전문가의 경계가 무색하게 모두가 입을 모아 이건 역사적인 사진이라고 한다. 사진가의 시선으로 봤을 때, 과연 이 사진의 가치는 무엇이고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아보자.

 


 

찰나의 순간, 역동적인 구도

먼저 미학적인 관점으로 보자. 사진은 사각형 프레임 안에 구도를 잡는 것으로 구성된다. 사진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3X3 구도, 소실점, 피보나치 등으로 시선을 따라 선을 그리듯이 사진을 구성한다. 그 중에 안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삼각 구도가 있다.

 

사진을 보면 트럼프가 오른팔을 높이 치켜 올려서 관람자의 시선이 위쪽을 향하게 만든다. 위에서 시작한 시선이 주변의 인물들을 향해 아래로 내려가면 좌우로 퍼지면서 삼각형이 연상되는 구조가 보인다. 이것을 삼각구도라고 한다. 거기에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깃대와 성조기 역시 삼각형의 한 각을 이루고 있다. 아쉬운 점으로는 좌측 중간에 기물이 보여서 구도를 약간 헤치고 있는데 이미지의 메시지가 워낙 강력하니 큰 결함은 아니다. 이 사진은 보도사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포토샵으로 저 기물을 지웠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우측 아래에 있는 누군가의 한쪽 팔이 중앙으로부터 이어지는데, 이 팔이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좌우로 퍼트리고 있어서 사진이 갖고 있는 선의 힘을 약화시킨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거의 정중앙에 위치한 트럼프의 표정이다. 치켜 올린 주먹과 위용을 펼치는 표정은 전 대통령이자 대선 주자의 기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진 속의 구도를 보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군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사진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아버지의 깃발>(2007) 포스터의 본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처절했던 전투에서 기어코 승리한 미 해군의 상징과도 같은 사진이다. 미국 현지에선 트럼프가 총격 사건을 조작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오지마 전투에서의 이 사진도 연출을 위해서 커다란 성조기를 현장에 들고 와서 다시 찍었다고 한다.

 

 

 

사진과 그 바깥의 이야기

이번엔 사진에 얽힌 맥락에 대해서 살펴보자. 알다시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미국의 대선 시즌이 한창이다. 공화당 진영의 거물인 트럼프가 대낮에 총을 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것만으로도 대서특필감인데 절묘한 순간에 고개를 돌려 머리를 맞지 않고 귀를 맞는 것으로 회피한 그의 천운에 감탄했고, 피를 흘리며 피난하는 와중에 저 포즈를 취한 것에 경탄했다.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뻔한 그 순간에 그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의 의지 자체가 사진 속에 여실히 담겼다. 트럼프라는 개인의 상념과 사진 바깥에서 얽힌 현실의 무수한 이해관계가 이 사진으로 말미암아 방점이 찍혔다.

 

사진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먼 훗날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세상의 맥락을 응축하여 전달하는 기록과 메세지는 사진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흥미롭게도 트럼프의 오른팔은 깃대의 각도와 절묘하게 겹쳐져 마치 성조기를 들어 올린 것 같은 포즈처럼 보인다. 거꾸로 펄럭이는 성조기는 무엇을 의미할지 각자가 해석하기에 나름일 것이다.

 

한편,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의 사진기자 에반 부치(Evan Vucci)는 지난 2021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테랑 사진기자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업무 모드로 들어갔으며, 추가 총격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아마도 그는 사진기자로써 본능적으로 어떻게 이 현장을 담아야 할 지 그 순간에 머릿속으로 동선과 구도를 예상했을 거라고 본다.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그는 베테랑답게 정확하고도 유연하게 현장에 대처했고, 역사적인 순간을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기록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사진의 힘

사진인들이 AI의 한계점을 논하기에 좋은 사례가 생겼다. (결코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이미지 생성 AI로 디테일한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서 이러한 사진을 AI는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AI로서는 예측할 수도 완성해 낼 수가 없는 사진이라고 본다. 이것은 오직 사진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결국 AI로 만들어낸 창작물은 인간이 만들어 온 작업물의 모방과 재창조 혹은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창작물이 있었기에 이미지 생성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한들 AI가 피카소가 될 수는 없다. 물론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의 중심이 되는 자신의 이야기와 메시지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기술에 굴복하지 않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